해방 후 모교에는 부산 경남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든다. 당시 기록을 보면 입학 경쟁이 치열하였음을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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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도별 입학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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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6년? 지원자 1480명?? 입학자 280명
? 1947년? 지원자? 970명???입학자 280명
? 1948년? 지원자 1562명?? 입학자 42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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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 정원을 대거 늘린 1948년도에도 경쟁률은 여전히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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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는 인문계 중등교로서 1946년도 1회 졸업생을 제외하고는 2회 부터는 수업 연한 6년제로 졸업한다. 당시 조사한 졸업생 상황에서 110명의 졸업자(1,2회 졸업자로 추정) 중 진학 67명, 취직 41명 그리고 사망 2명으로 집계되어 있다. 취직자 41명 중에는 관공서 6명, 회사 6명, 가업 29명으로 나와 있다. 1회와 ?2회 졸업생은 같은 학년이지만 1회는 4년제, 2회는 2년간 수업 연한을 늘린 6년제로 졸업하는데, 졸업 후 대학으로 바로 진학하기에 경제적으로나 가정 형편상 어려운 인재들이 많았음을 알 수있다. 당시 진학을 하지 못하고 취직을 택한 졸업생의 상당수는 후일 대학에 다시 진학하였을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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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들의 출신지 상황도 관심을 끈다. 1948년도 입학자의 도군별 출신 상황을 보면 부산부 173명, 김해군 54명, 울산군 38명. 동래군 26명, 밀양군 18명, 통영군 18명,창원군 16명, 양산군 9명, 마산부 9명, 창녕군 4명, 경남타군 71명 그리고 타도 55명이다. 타도 출신들이 상당히 많았음을 알 수있다.?동래군도 26명이나 되지만 그 지역에 오래된 명문 동래고보(동래중)가 있어 김해나 울산 지역 출신보다 적은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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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 지역은 전통적으로 부산보다 민족 의식이 강한 지역이라 부산부에 편입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행정 구역상 부산보다 우위에 있던 지역이라 더욱 그러하다. 해방 후에도 1949년에야 부산부의 시제 실시와 더불어 부산시에 속하게 된다. 동래고보는 일제 시대인 1924년 1회 졸업생을 배출한 이래 수많은 한국인 인재를 키워낸 전통의 명문교이다. 해방 후 대구의 경북고나 광주의 일고만큼 이 지역을 대표하는 학교로까지 발전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지리적 위치가 부산 도심에서 떨어져 있었고 행정 구역상 부산과 분리되어 있었던 점 등이 제한적 요인 중 주요한 부분으로 사료된다. 향후 동래고의 약진도 함께?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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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문원장님 대단 합니다.
밀양군 출신 18명중 1회 졸업생 한분이 밀양에서 외과의사로 명성을 날렸는데
그 선배님 동생분이 민병대 국어 선생님 입니다. 민병대 선생님은 국어 당당이라
도서관 책임자 였는뎨 그때 도서부로 김민기 , 이헌 , 백민호 였습니다.
민성기선생님도 대학 오시기 전에 경남고에서 역사 선생님을 하셨습니다.
부산대를 오시고 난뒤 부산대 사학과를 이끌어 가시면서 사학과 교수진에 경고 출신들을 많이 뽑았습니다. 당시는 지명하면 바로 전임으로 들어 왔습니다.주로 경남고 출신으로 서울대 졸업생을 맘에 들면 데리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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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동창회 부산동창회 홈피에 내용을 올리는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문원장님 허락 하시면 내용을 복사해서 제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문 원장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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